동양의 음양조화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는 태초부터 양성의 유성생식을 기초로 모든 종에서 암수의 구분이 분명하다.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포유류에서 양성이 나타내는 특성은 매우 유사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들은 이러한 양성이 자연스럽게 조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간사회에 있어서도 어쩌면 지금까지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그 균형이 유지되어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만약 이런 성의 균형이 깨어지고, 양성이 주어진 고유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인류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의 남성성과 여성성은 동물학적으로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지만, 사회적 역할은 물론 다른 모든 분야에서 분명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고 이런 다름이 완벽한 균형 속에서 조화를 이루었을 때 그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전근대의 인류사에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었고, 이것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성징적 특성을 고려할 때 어쩌면 피치 못할 결과로 볼 수 있다.
여성은 반면 가정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 남성의 표면적이고 외형적인 사회기능보다 훨씬 중요하고 소중한 기능을 담당해 왔으며, 인류의 존속과 번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특히 대한민국 정부의 여성과 관련한, 보다 정확하게는 여성성과 관련한 접근과 정책은 뭔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다.
현대사회는 여성의 보다 많은 사회참여를 요구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사회참여 기회와 그 역할이 증가하고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단체가 중심이 된 사회일각에서는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여성과 남성의 수적 성균형을 요구하고 있고, 이것이 양성평등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염려를 자아낸다.
이것은 인간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역할과 기능에서 남성성보다도 오히려 훨씬 중요한 여성성에 대한 열등의식 또는 막연한 남성성 선호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양성평등은 양성이 서로의 성징적 차이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남성성은 우월한 신체적 조건에서 비롯된 정복과 생산, 소유 등의 동적인 성징적 특성이 있고, 여성성은 연약한 신체조건에 반해 남성성에서는 결여된 섬세한 정서와 강한 정신력으로 사랑, 나눔, 포용, 절제 등의 정적인 성징적 특성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들이 모두 남성성의 상징이 되어야 하고, 여성들은 모두 여성성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그 어떤 남성보다도 남성성이 더 강했던 여걸들과 여성 영웅들이 많이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 또한 적지 않았다.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와 같은 여걸과 영웅들이 여성성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남성은 그 성징상 정치, 사회, 경제활동이, 그리고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부터 가정과 가족을 중심으로 한 내적이고 정적인 역할이 가장 자연스럽고, 이런 양성의 기능과 역할이 고르게 중시되고 평가 받아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남성성에 비해 어쩌면 더 소중하게 보호되었어야 할 여성성의 기능과 역할을 무시하고 학대했던 경향이 있었으며, 이런 경향은 오늘날까지도 여성들이 여성성을 내려 놓고 남성과 남성성을 경쟁하며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엄밀히 볼 때, 과거의 남성 선호사상이 남성성 선호사상으로 가면을 바꾸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현대사회의 남성화는, 대량생산과 소비, 소유의 탐욕을 부추기고 이를 통해 외형적, 물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남성성의 서구물질문명과 시장경제체제가 번영하고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가속화되었다.
현대의 인간사회에서 양성평등 또는 여권신장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은 면밀히 그 실체를 살펴보면 사실은 전통적 남성성에 의한 여성성의 착취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성이 우월한 서구물질문화의 시장경제체제와 자본주의는 근대이후 산업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눈부시게 성장하여 불과 100~200년의 짧은 기간에 과거 수천년의 인류역사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요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인간의 소유와 소비에 대한 탐욕은 증산을 통한 공급확대로 절대 만족시킬 수 없었다.
고도로 서구화된 현대사회의 총생산과 소비 수준은 이미 그 한계를 넘은지 오래지만,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소유하는 경제성장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과잉공급과 과소비를 자양분으로 성장하는 현대사회의 경제시스템에 의해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현대인의 소유, 소비에 대한 탐욕이 현대 여성들을 더 이상 여성성에 안주하게 내버려 두지 않게 된 것이다.
현대사회의 물질숭상과 탐욕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경쟁적으로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해 그동안 사회와 가족, 가정의 뿌리가 되어 왔던 여성성의 포기를 주저없이 선택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들이 가정을 포기하고, 사회로, 정치 경제의 일선으로 내 몰리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을 남성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양성평등, 여권신장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사회, 경제, 정치, 학술 등 사회 전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앞에서도 한 번 언급했던 바, 역사적으로 어떤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훌륭한 여성전사들, 여성 정치가들이 있어왔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었다.
이 글에서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이런 예외적인 경우로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대표하거나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양성평등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차별없이 존중되어 그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 출발점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경시되고 소외되어온 여성성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현대의 인간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중 많은 부분이 이와 같은 양성의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은 불균형을 부추기고 여성들과 사회를 남성화시키는 중심에 여성들이 위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여성가족부와 같은 정부부처와 많은 여성단체들이 앞다투어 여성성의 말살과 여성의 남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여성정책 관련 정부부처와 민간단체들은 정치권, 혹은 사회조직의 각 부문에서 여성과 남성의 성비율로 양성평등을 저울질하고 역차별을 통한 여성의 참여비율을 높이는 것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회적 가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국회 또는 정부의 각 부처에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금녀의 구역과도 같았던 군대에도 더 많은 여군들이 입대하고 여성사관생도들이 남성사관생도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주는 것으로 여권이 신장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필자는 이런 현상의 이유로 이와 같은 여성대표기관들이 여성성을 대표하는 여성들이 아니라, 남성성을 선호하여 가장 남성화 되어 있는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정책을 위해서는 먼저 빠르게 남성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성징적 불균형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사라져가는 사회의 여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동안 제대로 평가되어 오지 못한 여성들의 여성적 역할과 여성성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보상할 수 있는 제도를 찾아야 한다.
여성들의 여성성과 여성적 역할에 사회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에 합당한 사회적 대우와 경제적대가가 지불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여성들의 무분별한 전방위적 사회진출 대신, 현대사회에서 결여된 여성성의 회복을 위해 여성이 사회에서 기능하고 기여할 수 있는 사회, 경제, 정치분야를 개척하고 이런 여성적인 분야에서 여성들에 의해 발휘되는 여성성이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일에 여성 관련 부처와 단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와 다름은 서로 다투고 경쟁하기 위한 구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균형과 조화 속에서 완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상기하고, 현대사회의 남성성 선호가 초래한 심각한 사회문제와 여성성 회복 그리고 양성의 균형과 조화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여성들의 여성성 회복으로부터, 여성들의 여성적 역할에 대한 사회경제적 가치 재평가와, 그 가치가 적절히 보상되고 보호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고는 가속화되는 사회의 남성화를 막을 수 없고, 끝없는 소비와 소유의 탐욕으로 여성들을 정치, 사회, 경제 전반의 생산전선으로 내몰면서 모든 분야에서 양성의 수를 맞추는 것으로 양성평등이라고 하는 현재의 모순을 벗어날 수 없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차별 없이 존중되고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의미의 양성평등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해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필자는 이 글에서 화두로 던져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