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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

생각의 발자취
[ 이 생각은 2016년 06월 16일 시작되어 총 5명이 참여하였습니다. ]
취업후 1년 이하 모든 근로자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자 제안

개 요


현재 공무원들과 공장이나 회사에 취직하여 일을 하게 되면 퇴사를 할때 일정부분 지급을 받는 것을 바로 퇴직금이라고 한다. 개인사정이라든지 회사를 옮긴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회사를 나오게 되면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 1년 이상인 자에게만 1개월치의 퇴직금 명목으로 급여를 받는다. 아무리 갑과 을의 관계여도 어긋나는 부분으로 이를 개정하여 시행하자는 취지임.

 

현 실태 및 문제점


퇴직금 산정기준은 1일 평균임금 × 30일 × 총근로기간 ÷ 365, 여기에 1일 평균 임금은 퇴직 전 3개월간의 총 임금을 나눈 평균임금으로 계산하고 있다. 퇴직금액을 1년에서 월단위로 계산을 해서 지급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며 1개월을 급여로 1년 이하인 자에게도 월단위로 계산을 해서 지급해야 한다. 현재의 퇴직금 지급방식은 방법과 방식은 이치에도 어긋나며 시대적인 발상에 맞지도 않으며 문제점으로 대두됨.

 

개선방안


모든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작업장, 공장이나 회사에서 퇴직금 지급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법한 내용은 바로 '1년이상 근무'이다. 1년 이상 근로한 근로자가 퇴직하는 경우 지급되는 금액이며 계속되는 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 정도의 평균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말하며 예를 들어서 월 120만 원의 급여를 받고 1년이 지난 후에 퇴사를 하였다면 퇴직금으로 1개월치 급여 120만원을 받는다고 하였을 때로 가정하여 10개월을 근무하고 퇴사를 하였을 때에는 100만원을 지급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임.

 

기대효과


퇴직금 지급은 사업주가 지켜야 할 선택이 아니며 필수적인 의무로 노동한 정당한 대가로 퇴직금 산정 1년 이하의 퇴사자도 월 별로 1개월치의 M/M을 나누어서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처사이며 법적으로 되어있다면 고쳐서 시행하면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제도적인 검토가 이루어져 시행되어 이제는 1년이 안 되어도 개월수로 퇴직을 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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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발전된 지역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비트코인 채굴산업의 전략산업 지정

1. 목표:에너지 저장 화폐인 비트코인의 중요성 제고 및 채굴산업을 활용한 전력망 최적화를 통해 국가 에너지/경제 혁신2. 개요:세계적으로 환경을 고려한 지속가능 발전이 중요시되어, 풍력 및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 제주도 등지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나,에너지 생산이 과잉 집중되면서 지역 수요보다 더 많은 전기가 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로 인해 전력망에 과부하가 발생하여, 많은 발전소가 강제로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음.현재해결책으로 육지로 송전하는 연계선을 신설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실시하고 있으나, 송전선이 연계된 지역까지 출력제어가 발생하는 등 지역간 갈등으로까지 심화되고 있음.이러한 발전 중단은 민간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큰 경제적/사회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어, 과잉생산된 전력을 비트코인 채굴에 활용하여 에너지화폐로 저장하는 혁신 사업을 제안.3. 주요 사업: 비트코인 채굴사업 국가첨단전략산업 지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과잉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비트코인 채굴사업을 추진. 이를 통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에너지를 손실 없이 효율적으로 가치저장 할 수 있음. 국가사업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과 계통망을 연계하여 민간 가상화폐 채굴사업자가 과잉생산된 전력을 사용하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 탄력적인 채굴사업 운영을 통한 스마트 그리드 최적화 전력수요가 낮을 때는 남는 전력을 이용해 채굴기를 가동하고,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경우 채굴을 즉시 중단하여 지역사회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탄력적인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구축.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전력 수요의 급변동에 대응할 수 있으며, 에너지 낭비없이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음. 고정 테넌트를 유치하는 HPC 수익사업 고정적으로 운영 가능한 AI 테크기업 테넌트(HPC, High Performance Computing) 수익사업을 통해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4. 기대 효과: 국가 에너지 효율성 증대 지역 과잉 신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전력망의 부담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음. 신재생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RE100, 제로 카본 등 국가 에너지 전략의 성공적인 실행에 기여할 수 있음. 비트코인 경제특구 등 경제적 이익 및 일자리 창출 비트코인 채굴사업을 통해 새로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지자체 및 국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채굴 사업을 허용하는 지역에서 가상화폐 채굴산업 및 HPC 컴퓨팅 운영을 통해 새로운 4차산업 일자리와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이 창출될 것임. 국가 전력망 최적화를 통한 안정성 강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는 전력망 공사나 거대 인프라를 확장하지 않고, 전기에너지를 비트코인이라는 가치저장 수단으로 전환함으로써,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즉시적인 지역문제, 에너지 발전사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 탄력적인 스마트 그리드 운영을 통해 국가단위 전력 수요의 변동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이는 국가 전력망의 안정성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음.5. 참고 사항:일본 최대 전력회사인 도쿄 전력의 자회사, Agile Energy X(https:agileenergyx.co.jp/en/)는 이미 잉여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비트코인 채굴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과거 일본은 메이지 유신 개방으로 빠른 경제개발과 발전을 이룩한 반면, 대한민국은 쇄국정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역사를 되풀이 할 것인지에 대한 답습을 제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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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02

오늘날 같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 나는 최소 20여년 전 대통령령의 긴 제도적 틀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고 따르는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 따라서 구한말 고종의 명이 당시 경남 남해에 둥지를 튼 우리 조상에게 전달됐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감시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시선을 말하고자 한다. 제대로 된 족보도 없고 어릴 때 진양정씨는 친척이면서 그들과 다른 정씨라 했다. 명절 때 집안의 모임에서는 같은 곳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다른 곳을 향해 절을 해야 했고 아버님이 말하는 범계공파는 진양정씨 족보에도 없다. 이 외에도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으나 정도전과 연결하면 거의 대부분 이해가 된다. 왕씨가 왕씨, 전씨, 옥씨의 성으로 살아간 것처럼 정씨 또한 진양정씨나 하동정씨, 김해김씨 등에 숨어 살아야 했고 정봉주 의원처럼 봉화정씨로 사는 사람도 있다. 620여 년 전의 역사이니 그 후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겠으나 이렇게 나이가 들고 보니 나의 조상에게는 또 다른 은밀성이 내포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 당시 동네 어른들 말로는 아버지 5살에 혼자 일본으로 할아버지를 찾아갔고 마을에서는 아버지를 찾아 난리가 났단다. 이는 단순히 어렸던 것으로 기억해서 그렇고 대략 7살경 도일(渡日)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아버지는 교토에서 할아버지와 머물렀고,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교토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국인이 영어를 가르쳤는데 아버지는 영어를 가장 잘 하는 조선인이었다. 영어 발음을 잘하여 일본 학생들에게 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한 번은 하굣길에 담 넘어온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을 주워 먹었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감나무집 주인이 뛰어와 붙잡아 가기에 조선인이 일본인의 감을 먹었으니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인은 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가 몸에 탈이 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병원비까지 내어 주었다. 오면서 나무의 감도 몇 개 따주며 혹시 배가 아프면 다시 찾아 오라고 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625전쟁 때, 아버지는 일본어와 영어를 어느 정도하여 부산 동래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친척들 말로는 너희 아버지가 부산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항상 권총도 차고 다녔는데, 미군부대 물자 관리를 담당하여 조금만 친척들을 챙겼으면 우리도 좀 잘 살았을 거라며 불만이다. 정주영 회장이 미군 물류 창고를 관리 운영 할 때 아버지는 미군복을 입고 있던 물자담당 미군 중사였다. 당시는 긴급한 상황이다 보니 카투사도 아니고 대한민국 군인도 아니었지만 전쟁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총알 하나도 빼돌리지 않고 5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상사로 제대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심성은 모르겠느나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버지은 일본으로 징용간 할아버지의 일수표만 믿고 한량으로 한평생을 보냈다. 어머님도 이를 믿고 시집 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려도 아버지는 이를 꼭 쥐고 있었고, 나 또한 어려울 때 이를 들고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서 노임을 달라며 항의했다. 세종로에 있는 일본 대사관 직원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뻔한 소리만 했다. 전쟁 한 번 하지도 못하고 나라를 넘긴 찌질이 국가가 국민이 평생을 바친 노동의 댓가마저 훔쳐 가 버렸다. 이 절도범이거나 범죄집단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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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02

오늘날 같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 나는 최소 20여년 전 대통령령의 긴 제도적 틀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고 따르는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 따라서 구한말 고종의 명이 당시 경남 남해에 둥지를 튼 우리 조상에게 전달됐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감시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시선을 말하고자 한다. 제대로 된 족보도 없고 어릴 때 진양정씨는 친척이면서 그들과 다른 정씨라 했다. 명절 때 집안의 모임에서는 같은 곳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다른 곳을 향해 절을 해야 했고 아버님이 말하는 범계공파는 진양정씨 족보에도 없다. 이 외에도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으나 정도전과 연결하면 거의 대부분 이해가 된다. 왕씨가 왕씨, 전씨, 옥씨의 성으로 살아간 것처럼 정씨 또한 진양정씨나 하동정씨, 김해김씨 등에 숨어 살아야 했고 정봉주 의원처럼 봉화정씨로 사는 사람도 있다. 620여 년 전의 역사이니 그 후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겠으나 이렇게 나이가 들고 보니 나의 조상에게는 또 다른 은밀성이 내포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 당시 동네 어른들 말로는 아버지 5살에 혼자 일본으로 할아버지를 찾아갔고 마을에서는 아버지를 찾아 난리가 났단다. 이는 단순히 어렸던 것으로 기억해서 그렇고 대략 7살경 도일(渡日)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아버지는 교토에서 할아버지와 머물렀고,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교토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국인이 영어를 가르쳤는데 아버지는 영어를 가장 잘 하는 조선인이었다. 영어 발음을 잘하여 일본 학생들에게 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한 번은 하굣길에 담 넘어온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을 주워 먹었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감나무집 주인이 뛰어와 붙잡아 가기에 조선인이 일본인의 감을 먹었으니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인은 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가 몸에 탈이 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병원비까지 내어 주었다. 오면서 나무의 감도 몇 개 따주며 혹시 배가 아프면 다시 찾아 오라고 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625전쟁 때, 아버지는 일본어와 영어를 어느 정도하여 부산 동래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친척들 말로는 너희 아버지가 부산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항상 권총도 차고 다녔는데, 미군부대 물자 관리를 담당하여 조금만 친척들을 챙겼으면 우리도 좀 잘 살았을 거라며 불만이다. 정주영 회장이 미군 물류 창고를 관리 운영 할 때 아버지는 미군복을 입고 있던 물자담당 미군 중사였다. 당시는 긴급한 상황이다 보니 카투사도 아니고 대한민국 군인도 아니었지만 전쟁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총알 하나도 빼돌리지 않고 5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상사로 제대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심성은 모르겠느나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버지은 일본으로 징용간 할아버지의 일수표만 믿고 한량으로 한평생을 보냈다. 어머님도 이를 믿고 시집 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려도 아버지는 이를 꼭 쥐고 있었고, 나 또한 어려울 때 이를 들고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서 노임을 달라며 항의했다. 세종로에 있는 일본 대사관 직원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뻔한 소리만 했다. 전쟁 한 번 하지도 못하고 나라를 넘긴 찌질이 국가가 국민이 평생을 바친 노동의 댓가마저 훔쳐 가 버렸다. 이 절도범이거나 범죄집단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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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목동 119안전센터 구급대원분들 칭찬드리고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9/29 일요일 오후 2시 30분쯤 응급환자였던 전창배라고 합니다.다른게 아니라 화성시 목동 119안전센터분들 덕분에 위급상황에서 도움받고 무사히 치료 및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이 곳에 글을 씁니다.당시 상황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설거지 중에 손가락을 다쳐 신경과 혈관이 파열되는 큰 상해를 입고 피가 멈추지 않는 상황이였습니다.요즘 의료대란이여서 치료받기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고자 119에 전화를 했습니다.콜대응 해주시는 분이 제 상황을 듣고서는 먼저 응급조치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구급차를 보내주시겠다고 했습니다.저는 다쳐서 너무 당황하고 놀란 상태였는데 전화 응대해주시는분이 너무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시고, 현명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그리고나서 접수 후 10분이 안되는 시간에 구급차가 왔고, 먼저 오신 구급대원분들께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보자마자 응급조치해주시고 치료 가능한 병원에 전화해서 알아봐주시는데 너무 감동이였습니다.여성 구급대원분이셨는데 제가 정신이 없어서 명찰에 있던 성함을 못봤네요ㅜㅜㅜ제 상태를 보시고 바로 관련 전문 병원에 연락해 확인하고 저에게 안내해주시는거보면서 업무관련지식이 풍부하고 베테랑같은 전문성이 느껴졌습니다.제가 다쳐서 많이 놀란 상태였고 땀이 많이났는데, 이송하는 내내 저한테 맞춰서 편의제공해주시고 치료를 잘 해주셨습니다. 또, 안심도 시켜주시더라고요.평소에 동탄에서 수원까지 주말에는 1시간넘게 걸리는데 이송도 빨리해주시고, 가는데까지 30분정도 걸린다고 친절히 말씀도 해주셨습니다.인생에서 처음으로 구급차를 탄 경험이였는데 훌륭한 구급대원분들 덕분에 감동까지 받았습니다.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당시 위급상황에서 119콜센터 대응 및 접수해주셨던분과 출동해주신 구급대원 2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이런분들이 계시기에 저같은 사람이 더욱더 안전하게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소방관련 종사자분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고 알고 있는데 국가에서 처우 개선과 많은 혜택을 지원줬으면 하네요.그럼 오늘도 고생하시고 화이팅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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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74

그런데 나는 가운데 큰 연못까지 전부 바꾸어 버렸다. 바로 전 시간의 유교수님 수업 내용대로…, 호!. 호! 유교수님은 연일 호호를 하시더니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자네 공무원하다 왔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공무원 처럼 발표 해!, 어디 있다가 왔어?, G전자 디자인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왔습니다., 호! 나도 말이야. 요즘 캐드를 배우고 있어. 내 연구실에 매킨토시도 있어. 한 번 따라와 봐 하시며 연구실에 있는 매킨토시를 보여 주었다. 어때! 필요하면 와서 써도 돼, 매킨토시는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잖아. ‘유교수님! 벌써 27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서울대학교는 학생과 교수님, 책은 확실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시설은 13년 전 부산기공이 서울대학교 보다 몇 배는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나는 서울대 시설이 그렇게 낙후된 것을 보고 매우 놀랬습니다. 사실 엄청난 대학에 들어 온 줄 알았거든요. 교수님께서는 그 도면을 내가 캐드로 그린 줄 알고 계셨지만 사실 제 손으로 그린 초안입니다. 그 위에 트레이싱지를 올려 로터링펜으로 완성합니다. 부산기공은 손으로 캐드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면을 그릴 줄 아는 학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엔진 같은 것을 보면 바로 3각법과 단면도, 정밀도 등이 그려지며 거의 정확하게 규격 도면으로 구현해 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두 각자의 전용 전문가용 제도판을 가져있고 그 연습량은 엄청납니다. 단지 고졸일 뿐이죠. `82년도에 1인당 컴퓨터가 한 대씩 주어졌으며, 기계과는 당시 수천만원씩 하는 장비가 각 학생 1인당 한 대씩 주어집니다. 900명 학생 전원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국립서울대학교가 겨우 컴퓨터 십여 대에 250여 명이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또한 교수님 연구실에서 매킨토시를 바로 찾지 못한 것은 사실 나는 그런 매킨토시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살짝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G전자에서는 수천만 원씩 하는 큰 모니터의 매킨토시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알리아스는 당시 가격이 수억이 넘습니다. 이런 컴퓨터도 언제든지 사용 할 수 있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장난감 같은 매킨토시를 자랑하면 제가 얼마나 곤란했겠습니까? 지금쯤이면 후배들의 교육환경이 많이 개선 됐으리라 기대합니다.’ 물론 대부분 고시나 박사 등이 목적이고, 그래서 나 같은 놈이 수석도 했겠지만…, 나는 서울대서 학생으로 배우기도 했지만, 아무튼 세상은 모순 덩어리라 생각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한 대를 모두 분해하여 도면으로 구현하라면 서울공대 박사 열 명 정도가 모여 1년 이상 걸려야 가능 할 것이다. 내가 너무 무시했나? 더 빨리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부산기공 출신 나 같은 사람 단 한 명이면 몇 개월 만에 완벽하게 완성 가능하다. 도대체 누가 고졸이고 누가 대졸이란 말인가? 나경원 의원만 봐도 그렇다 지금 상황은 진짜 매우 쪽팔리거나 아니면 아주 두려운 것이 맞다. 그런데 아직도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저게 사람이야 철면피야 쉽다. 진짜 내가 서당개로 있던 같은 건물의 서울법대 출신이 맞는지 궁금하다. 법에 대한 이해가 좀 많이 부족한가? 내가 법 입문부터 강의 좀 해줄까? 지금 진짜 진짜 쪽팔리거나 무서워 벌벌 떨어야 하는 상황이거든…, 아무렇지 않으면 그동안 나의원이 판결한 피고나 원도들은 다 뭐데? 최소한 최병렬 전)대표처럼 수그리고 있을 줄은 알아야 염치거든? 도대체 이 나라에서 배웠다는 기준이 뭐야? 철면피면 많이 배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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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목동 119안전센터 구급대원분들 칭찬드리고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9/29 일요일 오후 2시 30분쯤 응급환자였던 전창배라고 합니다.다른게 아니라 화성시 목동 119안전센터분들 덕분에 위급상황에서 도움받고 무사히 치료 및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이 곳에 글을 씁니다.당시 상황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설거지 중에 손가락을 다쳐 신경과 혈관이 파열되는 큰 상해를 입고 피가 멈추지 않는 상황이였습니다.요즘 의료대란이여서 치료받기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고자 119에 전화를 했습니다.콜대응 해주시는 분이 제 상황을 듣고서는 먼저 응급조치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구급차를 보내주시겠다고 했습니다.저는 다쳐서 너무 당황하고 놀란 상태였는데 전화 응대해주시는분이 너무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시고, 현명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그리고나서 접수 후 10분이 안되는 시간에 구급차가 왔고, 먼저 오신 구급대원분들께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보자마자 응급조치해주시고 치료 가능한 병원에 전화해서 알아봐주시는데 너무 감동이였습니다.여성 구급대원분이셨는데 제가 정신이 없어서 명찰에 있던 성함을 못봤네요ㅜㅜㅜ제 상태를 보시고 바로 관련 전문 병원에 연락해 확인하고 저에게 안내해주시는거보면서 업무관련지식이 풍부하고 베테랑같은 전문성이 느껴졌습니다.제가 다쳐서 많이 놀란 상태였고 땀이 많이났는데, 이송하는 내내 저한테 맞춰서 편의제공해주시고 치료를 잘 해주셨습니다. 또, 안심도 시켜주시더라고요.평소에 동탄에서 수원까지 주말에는 1시간넘게 걸리는데 이송도 빨리해주시고, 가는데까지 30분정도 걸린다고 친절히 말씀도 해주셨습니다.인생에서 처음으로 구급차를 탄 경험이였는데 훌륭한 구급대원분들 덕분에 감동까지 받았습니다.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당시 위급상황에서 119콜센터 대응 및 접수해주셨던분과 출동해주신 구급대원 2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이런분들이 계시기에 저같은 사람이 더욱더 안전하게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소방관련 종사자분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고 알고 있는데 국가에서 처우 개선과 많은 혜택을 지원줬으면 하네요.그럼 오늘도 고생하시고 화이팅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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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02

오늘날 같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 나는 최소 20여년 전 대통령령의 긴 제도적 틀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고 따르는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 따라서 구한말 고종의 명이 당시 경남 남해에 둥지를 튼 우리 조상에게 전달됐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감시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시선을 말하고자 한다. 제대로 된 족보도 없고 어릴 때 진양정씨는 친척이면서 그들과 다른 정씨라 했다. 명절 때 집안의 모임에서는 같은 곳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다른 곳을 향해 절을 해야 했고 아버님이 말하는 범계공파는 진양정씨 족보에도 없다. 이 외에도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으나 정도전과 연결하면 거의 대부분 이해가 된다. 왕씨가 왕씨, 전씨, 옥씨의 성으로 살아간 것처럼 정씨 또한 진양정씨나 하동정씨, 김해김씨 등에 숨어 살아야 했고 정봉주 의원처럼 봉화정씨로 사는 사람도 있다. 620여 년 전의 역사이니 그 후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겠으나 이렇게 나이가 들고 보니 나의 조상에게는 또 다른 은밀성이 내포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 당시 동네 어른들 말로는 아버지 5살에 혼자 일본으로 할아버지를 찾아갔고 마을에서는 아버지를 찾아 난리가 났단다. 이는 단순히 어렸던 것으로 기억해서 그렇고 대략 7살경 도일(渡日)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아버지는 교토에서 할아버지와 머물렀고,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교토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국인이 영어를 가르쳤는데 아버지는 영어를 가장 잘 하는 조선인이었다. 영어 발음을 잘하여 일본 학생들에게 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한 번은 하굣길에 담 넘어온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을 주워 먹었다. 이를 우연히 목격한 감나무집 주인이 뛰어와 붙잡아 가기에 조선인이 일본인의 감을 먹었으니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인은 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가 몸에 탈이 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병원비까지 내어 주었다. 오면서 나무의 감도 몇 개 따주며 혹시 배가 아프면 다시 찾아 오라고 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625전쟁 때, 아버지는 일본어와 영어를 어느 정도하여 부산 동래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친척들 말로는 너희 아버지가 부산 시내를 돌아다닐 때는 항상 권총도 차고 다녔는데, 미군부대 물자 관리를 담당하여 조금만 친척들을 챙겼으면 우리도 좀 잘 살았을 거라며 불만이다. 정주영 회장이 미군 물류 창고를 관리 운영 할 때 아버지는 미군복을 입고 있던 물자담당 미군 중사였다. 당시는 긴급한 상황이다 보니 카투사도 아니고 대한민국 군인도 아니었지만 전쟁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총알 하나도 빼돌리지 않고 5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상사로 제대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심성은 모르겠느나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버지은 일본으로 징용간 할아버지의 일수표만 믿고 한량으로 한평생을 보냈다. 어머님도 이를 믿고 시집 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려도 아버지는 이를 꼭 쥐고 있었고, 나 또한 어려울 때 이를 들고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서 노임을 달라며 항의했다. 세종로에 있는 일본 대사관 직원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뻔한 소리만 했다. 전쟁 한 번 하지도 못하고 나라를 넘긴 찌질이 국가가 국민이 평생을 바친 노동의 댓가마저 훔쳐 가 버렸다. 이 절도범이거나 범죄집단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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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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