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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

생각의 발자취
[ 이 생각은 2016년 06월 17일 시작되어 총 6명이 참여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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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화개면 섬진강 위에 있는 다리

동서화합과 태극문양을 상징해서 원색인 빨간색과 하얀색을 칠한 거대한 아치교이다. 그런데 이 다리 때문에 섬진강과 지리산이 초라해 보인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고 어울리는 다리를 설계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설계자의 이름이 공개되었으면 좋겠고 아치는 제거하고 원색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연경관을 해치는 건축물이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다.

우선 상징적으로 남도대교부터 개선해나가는 것이 어떨지...

  • 참여기간 : 2016-06-17~2020-07-26
  • 관련주제 : 지역개발>주택·건축
  • 그 : #디자인 #남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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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74

그런데 나는 가운데 큰 연못까지 전부 바꾸어 버렸다. 바로 전 시간의 유교수님 수업 내용대로…, 호!. 호! 유교수님은 연일 호호를 하시더니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자네 공무원하다 왔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공무원 처럼 발표 해!, 어디 있다가 왔어?, G전자 디자인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왔습니다., 호! 나도 말이야. 요즘 캐드를 배우고 있어. 내 연구실에 매킨토시도 있어. 한 번 따라와 봐 하시며 연구실에 있는 매킨토시를 보여 주었다. 어때! 필요하면 와서 써도 돼, 매킨토시는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잖아. ‘유교수님! 벌써 27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서울대학교는 학생과 교수님, 책은 확실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시설은 13년 전 부산기공이 서울대학교 보다 몇 배는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나는 서울대 시설이 그렇게 낙후된 것을 보고 매우 놀랬습니다. 사실 엄청난 대학에 들어 온 줄 알았거든요. 교수님께서는 그 도면을 내가 캐드로 그린 줄 알고 계셨지만 사실 제 손으로 그린 초안입니다. 그 위에 트레이싱지를 올려 로터링펜으로 완성합니다. 부산기공은 손으로 캐드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면을 그릴 줄 아는 학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엔진 같은 것을 보면 바로 3각법과 단면도, 정밀도 등이 그려지며 거의 정확하게 규격 도면으로 구현해 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두 각자의 전용 전문가용 제도판을 가져있고 그 연습량은 엄청납니다. 단지 고졸일 뿐이죠. `82년도에 1인당 컴퓨터가 한 대씩 주어졌으며, 기계과는 당시 수천만원씩 하는 장비가 각 학생 1인당 한 대씩 주어집니다. 900명 학생 전원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국립서울대학교가 겨우 컴퓨터 십여 대에 250여 명이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또한 교수님 연구실에서 매킨토시를 바로 찾지 못한 것은 사실 나는 그런 매킨토시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살짝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G전자에서는 수천만 원씩 하는 큰 모니터의 매킨토시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알리아스는 당시 가격이 수억이 넘습니다. 이런 컴퓨터도 언제든지 사용 할 수 있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장난감 같은 매킨토시를 자랑하면 제가 얼마나 곤란했겠습니까? 지금쯤이면 후배들의 교육환경이 많이 개선 됐으리라 기대합니다.’ 물론 대부분 고시나 박사 등이 목적이고, 그래서 나 같은 놈이 수석도 했겠지만…, 나는 서울대서 학생으로 배우기도 했지만, 아무튼 세상은 모순 덩어리라 생각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한 대를 모두 분해하여 도면으로 구현하라면 서울공대 박사 열 명 정도가 모여 1년 이상 걸려야 가능 할 것이다. 내가 너무 무시했나? 더 빨리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부산기공 출신 나 같은 사람 단 한 명이면 몇 개월 만에 완벽하게 완성 가능하다. 도대체 누가 고졸이고 누가 대졸이란 말인가? 나경원 의원만 봐도 그렇다 지금 상황은 진짜 매우 쪽팔리거나 아니면 아주 두려운 것이 맞다. 그런데 아직도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저게 사람이야 철면피야 쉽다. 진짜 내가 서당개로 있던 같은 건물의 서울법대 출신이 맞는지 궁금하다. 법에 대한 이해가 좀 많이 부족한가? 내가 법 입문부터 강의 좀 해줄까? 지금 진짜 진짜 쪽팔리거나 무서워 벌벌 떨어야 하는 상황이거든…, 아무렇지 않으면 그동안 나의원이 판결한 피고나 원도들은 다 뭐데? 최소한 최병렬 전)대표처럼 수그리고 있을 줄은 알아야 염치거든? 도대체 이 나라에서 배웠다는 기준이 뭐야? 철면피면 많이 배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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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64

저런 놈이 서울대학을 나와가 아니고 저러니까 서울대학을 나온 것이 맞다. G전자 동료 중에 유재을이라고 있는데 재을이 형이 모교를 찾아가 정동배를 받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박대감은 서울산업대 조영쇠 교수를 찾아가 인사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는 불법이 아니라 기능올림픽 출신 중 산업대 나온 선후배 대부분은 이런 특혜로 들어갔다. 400점 만점에 국제대회 입상자는 200점을 주는데 합격선이 200점 후반대니 서류만 내면 합격이다. 이외에도 고려대, 홍익대 등 국제대회 입상자에게 특혜가 있는 대학들이 많다. 다만 산업대에 몰리는 것은 야간이기 때문이다. 박교수는 만날 때마다 물어보는 것이 이미 대학 문제는 다 끝났다. 솔직히 말해, 나는 평생을 박대감 따라 다니기도 그렇고, 또한 나는 진정으로 그림을 하고 싶었다. 퇴사 후는 인테리어업을 하며 살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왕 간다면 서울대학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박교수님의 제안 혹은 지도를 무시하고 몰래 회화과에 지원하여 떨어졌다. 회화는 먹고 살려고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배우려 한 것이다. 바로 두달 후 전문대학을 갔다. 당시 정보로는 서울대학원을 가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하고 영어를 배우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영어 문장을 읽고 모르는 단어는 작게 메모하여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시간 될 때마다 암기했다. 퇴근하여 확인하고 암기된 단어는 그대로 버리고 아직 암기 안 된 것은 따로 적어 벽이나 화장실 등 집 구석구석에 붙여 놓았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다시 정리하여 그래도 암기가 안 되면 그 단어만 별도로 모아 암기했다. 그렇게 영어 교재 몇 권을 떼고나니 영어 문장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암기로 시작했지만 한 번 뭔가를 깨닫게 되니 이제는 뭘해야 할지가 그냥 정해졌다. 언제까지는 태를 더 보충한다거나 구동사에 더 집중해야 되는 등 방향이 정해지면서 공부해야 할 내용들이 휠씬 더 많아졌다. 문제는 역시 시간이다. 문래동에서 산업대는 멀었지만 유한공전은 가까웠다. 시간을 벌어야 공부를 하고 우선은 실력을 쌓아야 뭘해도 한다는 생각으로 능력을 쌓는데 최선을 다했다. 전문대학을 다닐 때는 영어를 읽을 수가 없어 중학교 앞에서 영어 발음을 한글로 쓰놓은 사전을 찾아 23살에 ABC부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은 잘 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렇게 편입공부를 해야 서울대학원에서 만족 할 점수를 겨우 받을 수 있다. 틈만 나면 정상창, 유재을, 정경화, 오성지 등 서울대 출신 G전자 동료들에게 서울미대에 원서를 낼 테니 떨어지면 책임지라고 반협박도 했다. 그 중에서 재을이 형이 가장 애쓰주었다. 그렇게 9년을 악착같이 준비 중에 나교수님을 만났다. G전자 디자인연구소는 서울대 출신이 많다. 내가 사직하고 나올 때는 우리팀에서 정경화와 이상지가 서울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니까 한 팀에서 3명이 서울대학원을 갔다. 1990년 한강 제방이 붕괴되어 고양군이 물에 잠겼다. 이후 화정동은 신도시로 다시 태어났고 나는 화정동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아파트 분양을 받아 입주했다. 이렇게 최초의 화정동 주민이 됐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나이가 들자 뭔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회화전공을 하지 않길 잘 했다고 해야 할까? 결혼도 해야 하고…, 한 번은 평소와 다름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팀에 연아공대 여학생이 인턴으로 들어왔다. 아버님이 진주 중앙시장에서 시계수린가 장사인지를 한다고 했다. 얼굴도 예쁘고 키도 늘씬하며 성격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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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64

저런 놈이 서울대학을 나와가 아니고 저러니까 서울대학을 나온 것이 맞다. G전자 동료 중에 유재을이라고 있는데 재을이 형이 모교를 찾아가 정동배를 받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박대감은 서울산업대 조영쇠 교수를 찾아가 인사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는 불법이 아니라 기능올림픽 출신 중 산업대 나온 선후배 대부분은 이런 특혜로 들어갔다. 400점 만점에 국제대회 입상자는 200점을 주는데 합격선이 200점 후반대니 서류만 내면 합격이다. 이외에도 고려대, 홍익대 등 국제대회 입상자에게 특혜가 있는 대학들이 많다. 다만 산업대에 몰리는 것은 야간이기 때문이다. 박교수는 만날 때마다 물어보는 것이 이미 대학 문제는 다 끝났다. 솔직히 말해, 나는 평생을 박대감 따라 다니기도 그렇고, 또한 나는 진정으로 그림을 하고 싶었다. 퇴사 후는 인테리어업을 하며 살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왕 간다면 서울대학원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박교수님의 제안 혹은 지도를 무시하고 몰래 회화과에 지원하여 떨어졌다. 회화는 먹고 살려고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배우려 한 것이다. 바로 두달 후 전문대학을 갔다. 당시 정보로는 서울대학원을 가려면 영어를 잘 해야 하고 영어를 배우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영어 문장을 읽고 모르는 단어는 작게 메모하여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시간 될 때마다 암기했다. 퇴근하여 확인하고 암기된 단어는 그대로 버리고 아직 암기 안 된 것은 따로 적어 벽이나 화장실 등 집 구석구석에 붙여 놓았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다시 정리하여 그래도 암기가 안 되면 그 단어만 별도로 모아 암기했다. 그렇게 영어 교재 몇 권을 떼고나니 영어 문장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암기로 시작했지만 한 번 뭔가를 깨닫게 되니 이제는 뭘해야 할지가 그냥 정해졌다. 언제까지는 태를 더 보충한다거나 구동사에 더 집중해야 되는 등 방향이 정해지면서 공부해야 할 내용들이 휠씬 더 많아졌다. 문제는 역시 시간이다. 문래동에서 산업대는 멀었지만 유한공전은 가까웠다. 시간을 벌어야 공부를 하고 우선은 실력을 쌓아야 뭘해도 한다는 생각으로 능력을 쌓는데 최선을 다했다. 전문대학을 다닐 때는 영어를 읽을 수가 없어 중학교 앞에서 영어 발음을 한글로 쓰놓은 사전을 찾아 23살에 ABC부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은 잘 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렇게 편입공부를 해야 서울대학원에서 만족 할 점수를 겨우 받을 수 있다. 틈만 나면 정상창, 유재을, 정경화, 오성지 등 서울대 출신 G전자 동료들에게 서울미대에 원서를 낼 테니 떨어지면 책임지라고 반협박도 했다. 그 중에서 재을이 형이 가장 애쓰주었다. 그렇게 9년을 악착같이 준비 중에 나교수님을 만났다. G전자 디자인연구소는 서울대 출신이 많다. 내가 사직하고 나올 때는 우리팀에서 정경화와 이상지가 서울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니까 한 팀에서 3명이 서울대학원을 갔다. 1990년 한강 제방이 붕괴되어 고양군이 물에 잠겼다. 이후 화정동은 신도시로 다시 태어났고 나는 화정동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아파트 분양을 받아 입주했다. 이렇게 최초의 화정동 주민이 됐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나이가 들자 뭔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회화전공을 하지 않길 잘 했다고 해야 할까? 결혼도 해야 하고…, 한 번은 평소와 다름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팀에 연아공대 여학생이 인턴으로 들어왔다. 아버님이 진주 중앙시장에서 시계수린가 장사인지를 한다고 했다. 얼굴도 예쁘고 키도 늘씬하며 성격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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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74

그런데 나는 가운데 큰 연못까지 전부 바꾸어 버렸다. 바로 전 시간의 유교수님 수업 내용대로…, 호!. 호! 유교수님은 연일 호호를 하시더니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자네 공무원하다 왔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공무원 처럼 발표 해!, 어디 있다가 왔어?, G전자 디자인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왔습니다., 호! 나도 말이야. 요즘 캐드를 배우고 있어. 내 연구실에 매킨토시도 있어. 한 번 따라와 봐 하시며 연구실에 있는 매킨토시를 보여 주었다. 어때! 필요하면 와서 써도 돼, 매킨토시는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잖아. ‘유교수님! 벌써 27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서울대학교는 학생과 교수님, 책은 확실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시설은 13년 전 부산기공이 서울대학교 보다 몇 배는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나는 서울대 시설이 그렇게 낙후된 것을 보고 매우 놀랬습니다. 사실 엄청난 대학에 들어 온 줄 알았거든요. 교수님께서는 그 도면을 내가 캐드로 그린 줄 알고 계셨지만 사실 제 손으로 그린 초안입니다. 그 위에 트레이싱지를 올려 로터링펜으로 완성합니다. 부산기공은 손으로 캐드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면을 그릴 줄 아는 학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엔진 같은 것을 보면 바로 3각법과 단면도, 정밀도 등이 그려지며 거의 정확하게 규격 도면으로 구현해 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두 각자의 전용 전문가용 제도판을 가져있고 그 연습량은 엄청납니다. 단지 고졸일 뿐이죠. `82년도에 1인당 컴퓨터가 한 대씩 주어졌으며, 기계과는 당시 수천만원씩 하는 장비가 각 학생 1인당 한 대씩 주어집니다. 900명 학생 전원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국립서울대학교가 겨우 컴퓨터 십여 대에 250여 명이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또한 교수님 연구실에서 매킨토시를 바로 찾지 못한 것은 사실 나는 그런 매킨토시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살짝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G전자에서는 수천만 원씩 하는 큰 모니터의 매킨토시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알리아스는 당시 가격이 수억이 넘습니다. 이런 컴퓨터도 언제든지 사용 할 수 있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장난감 같은 매킨토시를 자랑하면 제가 얼마나 곤란했겠습니까? 지금쯤이면 후배들의 교육환경이 많이 개선 됐으리라 기대합니다.’ 물론 대부분 고시나 박사 등이 목적이고, 그래서 나 같은 놈이 수석도 했겠지만…, 나는 서울대서 학생으로 배우기도 했지만, 아무튼 세상은 모순 덩어리라 생각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한 대를 모두 분해하여 도면으로 구현하라면 서울공대 박사 열 명 정도가 모여 1년 이상 걸려야 가능 할 것이다. 내가 너무 무시했나? 더 빨리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부산기공 출신 나 같은 사람 단 한 명이면 몇 개월 만에 완벽하게 완성 가능하다. 도대체 누가 고졸이고 누가 대졸이란 말인가? 나경원 의원만 봐도 그렇다 지금 상황은 진짜 매우 쪽팔리거나 아니면 아주 두려운 것이 맞다. 그런데 아직도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저게 사람이야 철면피야 쉽다. 진짜 내가 서당개로 있던 같은 건물의 서울법대 출신이 맞는지 궁금하다. 법에 대한 이해가 좀 많이 부족한가? 내가 법 입문부터 강의 좀 해줄까? 지금 진짜 진짜 쪽팔리거나 무서워 벌벌 떨어야 하는 상황이거든…, 아무렇지 않으면 그동안 나의원이 판결한 피고나 원도들은 다 뭐데? 최소한 최병렬 전)대표처럼 수그리고 있을 줄은 알아야 염치거든? 도대체 이 나라에서 배웠다는 기준이 뭐야? 철면피면 많이 배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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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가운데 큰 연못까지 전부 바꾸어 버렸다. 바로 전 시간의 유교수님 수업 내용대로…, 호!. 호! 유교수님은 연일 호호를 하시더니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자네 공무원하다 왔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공무원 처럼 발표 해!, 어디 있다가 왔어?, G전자 디자인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왔습니다., 호! 나도 말이야. 요즘 캐드를 배우고 있어. 내 연구실에 매킨토시도 있어. 한 번 따라와 봐 하시며 연구실에 있는 매킨토시를 보여 주었다. 어때! 필요하면 와서 써도 돼, 매킨토시는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잖아. ‘유교수님! 벌써 27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서울대학교는 학생과 교수님, 책은 확실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시설은 13년 전 부산기공이 서울대학교 보다 몇 배는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나는 서울대 시설이 그렇게 낙후된 것을 보고 매우 놀랬습니다. 사실 엄청난 대학에 들어 온 줄 알았거든요. 교수님께서는 그 도면을 내가 캐드로 그린 줄 알고 계셨지만 사실 제 손으로 그린 초안입니다. 그 위에 트레이싱지를 올려 로터링펜으로 완성합니다. 부산기공은 손으로 캐드 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도면을 그릴 줄 아는 학생들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엔진 같은 것을 보면 바로 3각법과 단면도, 정밀도 등이 그려지며 거의 정확하게 규격 도면으로 구현해 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두 각자의 전용 전문가용 제도판을 가져있고 그 연습량은 엄청납니다. 단지 고졸일 뿐이죠. `82년도에 1인당 컴퓨터가 한 대씩 주어졌으며, 기계과는 당시 수천만원씩 하는 장비가 각 학생 1인당 한 대씩 주어집니다. 900명 학생 전원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국립서울대학교가 겨우 컴퓨터 십여 대에 250여 명이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또한 교수님 연구실에서 매킨토시를 바로 찾지 못한 것은 사실 나는 그런 매킨토시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살짝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G전자에서는 수천만 원씩 하는 큰 모니터의 매킨토시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알리아스는 당시 가격이 수억이 넘습니다. 이런 컴퓨터도 언제든지 사용 할 수 있게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장난감 같은 매킨토시를 자랑하면 제가 얼마나 곤란했겠습니까? 지금쯤이면 후배들의 교육환경이 많이 개선 됐으리라 기대합니다.’ 물론 대부분 고시나 박사 등이 목적이고, 그래서 나 같은 놈이 수석도 했겠지만…, 나는 서울대서 학생으로 배우기도 했지만, 아무튼 세상은 모순 덩어리라 생각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한 대를 모두 분해하여 도면으로 구현하라면 서울공대 박사 열 명 정도가 모여 1년 이상 걸려야 가능 할 것이다. 내가 너무 무시했나? 더 빨리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부산기공 출신 나 같은 사람 단 한 명이면 몇 개월 만에 완벽하게 완성 가능하다. 도대체 누가 고졸이고 누가 대졸이란 말인가? 나경원 의원만 봐도 그렇다 지금 상황은 진짜 매우 쪽팔리거나 아니면 아주 두려운 것이 맞다. 그런데 아직도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저게 사람이야 철면피야 쉽다. 진짜 내가 서당개로 있던 같은 건물의 서울법대 출신이 맞는지 궁금하다. 법에 대한 이해가 좀 많이 부족한가? 내가 법 입문부터 강의 좀 해줄까? 지금 진짜 진짜 쪽팔리거나 무서워 벌벌 떨어야 하는 상황이거든…, 아무렇지 않으면 그동안 나의원이 판결한 피고나 원도들은 다 뭐데? 최소한 최병렬 전)대표처럼 수그리고 있을 줄은 알아야 염치거든? 도대체 이 나라에서 배웠다는 기준이 뭐야? 철면피면 많이 배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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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53

나는 곧 학원을 정리 할 생각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이들의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책임져 주기로 했다. 입시생은 선생도 중요하지만 학생에 따라 환경이 바뀌는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되니 이를 들어 주고자 했다. 그런데 9월쯤 되자 학생이 점점 줄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아까 원장님! 다시 봤습니다 하던 그 선생이 홍이대 앞에 작업실을 차려 놓고 학원을 여기저기 다니며 돈 좀 있는 집안의 학생들을 자기 작업실로 데려 갔다. 야! 서울 놈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더니 ‘다시 봤니 어쩌니’ 한지 얼마나 됐다고 내 학원에서 네고도 없이 학원비를 가장 잘 내는 학생들을 데리고 나갔다. 이는 미술학원 다니거나 운영 할 사람들은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친구는 월 15만원을 받다가 입시가 가까워지면 25만원 나중에는 50만원 이상까지 요구한다. 그러면 부모 입장에서는 이미 학원을 옮겼으니 방법이 없어 따라 간다. 참말로 학생 때부터 이 모양이다. 사람을 가장 절박한 상황으로 몰고가서 돈을 뺏어가는 수법이다. 하지만 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또한 곧 학원을 정리할 생각이었기에 그냥 듣고 말았다. 이는 학생들의 선택이고 또한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학생들을 위해 더 좋다고 판단했다. 지금 학생들 놓고 싸워봤자 당장 입시생들에게 도움 될 것도 없다. 1월쯤 되어 입시가 끝나고 미순이가 찾아왔다. 자기는 억울하다며 나한테 죄송하다고 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얘는 우리학원에서 청소하는 조건으로 무료로 다니고 있었는데 좀 있는 집의 알짜 수강생들이 잘 따랐다. 그래서 미순이를 데려가야 다른 학생들이 따라갔기 때문에 이선생이 미순이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모두 같이 갔다. 이후 점점 수강료를 올리더니 입시가 가까워지자 미순이에게도 수강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입시에서 떨어지자 그 곳에서 쫓겨났고 내가 문을 닫아 갈 곳이 없어 졌다. 사실 나는 미숙이가 학생인 것은 알지만 그렇게 잘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참을 수가 없다. 사나이 눈물에 약한 것 아니겠어? 그래서 홍이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과사무실에 전화했다. 나 G전자 연구소에 근무하는 정동배라는 사람인데 누구 학생 그곳 학생 맞죠. 지금 만나고 싶으니 G전자 연구소 앞으로 좀 보내 주셔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이선생이 찾아 왔다. 그래서 학생들 빼돌린 것과 미순이한테도 학원비 받은 사실, 얼마 전에 돈 안 되는 학생들 내 쫓은 것 까지 모두 확인했다. 너 따라와 좀 맞아야겠다, 원장 선생님! 회사 모르게 학원하시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학교로 전화 하실 생각을 다 하셨어요? 뭐 살짝 협박 같은 것이다. 야 이놈아! 대학생이면 기본이 되야지 너는 그 기본이 안 됐어! 이 친구는 보통 이상의 키에 체격이 호리호리하고 날렵했다. 그래서 작은 내가 우습게 보이기도 하고 G전자 다니는 내가 학원 운영하는 것으로 오히려 나를 협박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러는 것은 학생들 빼돌린 것으로 화내는 것이 아니다. 그 이후 그의 행동에 대해 화가 났고 나는 이미 학원을 정리했다. 암튼 정도 경영도 힘들다. 그래서 문래동의 작은 공장들 사이의 한 골목으로 데려가 엄청 두들겨 팼다. 그러자 이 친구도 뭔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자 급속히 태도를 전환하며 덤벼 들었다. 나는 빠르지는 않지만 싸우는데 일반인 보다 두려움이 적은 편이다. 맞으면 몇 대 맞고 치면되고 한 대 치고는 빨리 빠지면 된다. 그렇게 요리조리 피하면서 코피가 날 정도로 두들겨 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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