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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

생각의 발자취
[ 이 생각은 2016년 07월 04일 시작되어 총 5명이 참여하였습니다. ]
K 컬쳐밸리 내 숙박시설에서 외국인 상대 인터넷 방송 <일명 마리텔 방송> 시연 제안

이번 정책 제안은 이번에 조성될 K 컬쳐 밸리 내 외국인 숙박 시설에서 할 수 있는 외국인 상대 한류 컨텐츠 참여하기라는 제안인데 일명 MBC 방송국에서 인기리에 하고 있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컨텐츠를 한국을 찾아 온 외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등 주요 언어로 인터넷 중계를 시도 하자는 겁니다.

 

내용 포맷은 가칭 마리텔을 그대로 가져오되 진행은 가장 중심인 언어인 영어를 비롯해 일본어 중국어로 진행자가 각기 언어로 진행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그에 대한 반응들이 각기 자국 언어로 진행되게 해서 자국 언어 댓글달기로 그 문구들을 읽어주거나 혹은 그 요구 사항들을 즉석에서 응답해주는 외국인과의 교감을 통해서 그들의 한국문화 참여도를 높이자는게 그 취지입니다. 물론 한중일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진행자를 섭외해야 하겠지요.


혹은 K 컬쳐밸리 방문자들을 영어권 중국어권 혹은 일본인 관광객들을 특정 기간에 주된 대상으로 관광유치하고 그들의 언어로 진행하면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데에 따른 혼란 어려움은 줄어들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포맷은 당연히 한류 스타들중에도 외국어 능통자가 주요 섭외 대상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 포맷 시도가 K 컬쳐밸리의 문화 콘텐츠 다양성의 차원에서도 그리고 한류의 세계화? 한류 아이돌들의 외국어 습득을 독려 강화하는 계기가 될것이라 생각하며 당연히 국제화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한국 국민들의 글로벌화에도 도움을 주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외국어의 습득이 국제적 안목을 기르는 그 핵심 열쇠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들을 말해 본다면 facebook,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외국인들 특히 아시아권 여러 유저들이 영어, 중국어 등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것을 보고 우리나라보다 못한 나라에서 그와 같은 국제적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것들이 불안감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을 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제적 경쟁에서는 그다지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보여집니다. 


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외국어 습득에 대한 동기부여 내지 글로벌적 마인드 함양은 역시 우리 젊은이들의 선망이자 관심대상인 한류 스타 K-POP 아이돌들의 국제화, 글로벌화가 그 같은 동기부여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이 같은 정책제안이 작은 밀알이 되어 이 나라 앞날을 책임질 수많은 역군들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이상으로 정책 제안을 마칠까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투표 결과
총 참여인원 : 3 │ 실시기간 : 2016-07-04~2016-08-03
동의하시면 이곳에 클릭해 주세요. 2명(66.66%)
반대하시면 이곳에!! 1명(33.33%)
  • 참여기간 : 2016-07-04~2016-08-03
  • 관련주제 : 문화·체육·관광>관광
  • 그 :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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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70

결국 마운트 작업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실 마무리를 못할 것도 없지만 컴펌 받고 작품을 제출 할 방법이 없다. 출장을 마치고 1월쯤 필름 작업을 마무리하여 교수님께 연락했다. 동부이촌동 자택으로 오라고 했다. 필름을 마루에 펼치자 교수님은 어쩌면 좋아. 어쩌니 계속 이 말만 되풀이 했다. 뭘 말입니까?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하자 교수님은 졸업 작품전도 끝나고 성적도 끝났는데 지금 이걸 가져오면 어떻하냐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성적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교수님께 컴펌 받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온 것입니다. 내 너 출장 가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지금 오면 어쩌니 교수님은 내 필름에 매우 흡족했지만 해 줄 수 있는게 없어 미안해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애써 괜찮다고 했고 내가 온 목적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수업이 끝나도 교수님께 배울 것이 있어 왔음을 분명히 했다. 나는 성적보다 실력주의다. 사실 평생 성적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교수님의 염려가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나교수님과 학생으로서의 인연은 끝났다. 나는 집이 경기도 화정인데 주말이면 이촌동까지 차가 뻥 뚤려 거리는 좀 있지만 온누이교회를 다녔다. 교회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맞은편에서 신호 대기 중이다. 나교수님이었다. 나에 대한 인상이 강했는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야, 너 아직도 G전자에 다니니? 내가 G전자 다니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래 전자제품 말고는 뭘하고 싶어? 저는 제 사업을 할 겁니다. 제품 보다는 가로등이나 공원, 저수지, 지도, 도로, 인테리어 이런 것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것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했더니 나한테 딱 맞는 곳이 있다며 서울대 환경대학원을 소개했다. 그때부터 환경대학원을 위한 특훈이 시작됐다. 교수님은 교회에서 주말이면 자료를 구하여 나에게 주고 나는 관련 실기나 전문서적 등을 공부하여 확인 받기도 하고, 영어는 어차피 혼자해야 하니 계속하라고 푸시했다. 이런 특훈이 몇 개월 지나고 드디어 시험치는 날, 나는 한 시간 정도 엎드려 컨디션 조절을 하려고 2시간 쯤 일찍 도착했다. 시험 장소는 서울법대 대강당에서 실시했다. 운동장을 지나 법대 쪽으로 꺾어지는데 갑자기 관악산과 서울대 정문이 내게로 다가오더니 어깨를 꽉 눌러 다리가 확 풀려 버렸다. 내가 잔재주 좀 있다고 서울대에 원서를 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 들이지 못했다. 거의 기다시피하여 다시 운동장쪽으로 내려와 조경석에 걸터 않았다. 그 정문과 관악산의 무게에 몸을 움직 일 수가 없어 대락 1시간을 멍히 있었다. 다른 수험생들이 올라 오는 것이 보였다. 시험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시험장에 도착해 겨우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의외로 영어 시험이 쉬웠다. 이 정도면 합격하겠는데…,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영어 사전을 꺼내 시험 문제를 다시 풀어 보았다. 헉! 모든 단어 뜻을 사전으로 찾고는 이만 저만 실망을 한 것이 아니다. 서울대 문제가 이렇다는 것은 직작에 알고 있었지만 막상 사전으로 찾고 보니 정확히 알 수 있는 답이 거의 없다. 아주 쉽게 생각했던 문제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이런! 몇 년 후 영어 공부하면서 당해 출제문제와 답을 구하여 비교해 보았다. 운이 좋았는지 그동안 내가 본 영어 시험 중에서는 그래도 꽤 잘 맞춘 편이었다. 발표 날 참으로 긴장했다. 사람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서울대에 전화를 했다. 수험번호를 누르자 합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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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71

직장 생활 중이라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2차를 준비했다. 2차는 서류전형과 면접이라 이력서, 포트폴리오, 자소서 등을 준비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는 전문대학원이 3개가 있다. 보건전문대학원은 연건동에 있고 행정전문대학원은 주말 반으로 야간 비슷하다. 하지만 환경전문대학원은 사실상 주간으로 서울대 유일한 전문대학원으로 볼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예체능은 1년에 1명 정도의 T/O가 있다. 내가 아는 타대학 예체능계 출신이 서울대학원에 들어간 것은 미대 2명, 환경대학원에 내가 2번째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서울대 개교 이후 모두 4명 정도가 전부다. 얼마나 특이했으면 1년에 십수 명이 어떻게 들어 갔냐며 나를 찾아왔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 교수 중에도 98년쯤 연대 의대 출신이 처음으로 서울대 교수가 됐다고 교내신문에 실릴 정도다. 그만큼 서울대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폐쇄적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이 500여개나 되니 이런 학교 하나 정도 있는 것도 좋다고 본다.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모두 똑 같을 필요는 없다. 나는 주로 수출을 많이 다루어 해외를 여러 차례 나갔는데 국제사회에서의 서울대학교나 그 출신들의 위상은 국내에서 보다 더 대단하다. 당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송상현 국제사법재판소 소장 등도 서울대 출신이다. 한 번은 미국에서 당해 최고의 의학자 열 몇 명을 언론에 실었는데 그 중 4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물론 이들도 대학원은 하버드와 존스홉키스 출신으로 소개됐다. 최종 합격하고 알았는데 내가 시험 칠 때 서울 미대생 2명이 응시 했지만 모두 영어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운 좋게 내가 합격했다. 그 친구들이 영어를 잘 했으면 어이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합격 소리에 나교수님이 불러 감사 기도를 했다. 나교수님은 기도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천성을 보면 기도 할 때 잘 울 것도 같다. 암튼 누군가 내 일에 진심으로 이렇게 감사하는 것은 나교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심지어 어머니께 서울대학원에 합격했다고 했더니 그런데는 뭣하러 가냐? 돈이나 벌지!했다. 나교수님은 그동안 제자를 여러 명 보냈으나 모두 영어에서 탈락 했다. 아무튼 나를 위해 기도하는 나교수님께 그만 반하고 말았다. 이 때부터 우리 나교수님은 항상 우리 정동배, 우리 정동배 하셨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게 말하려 하면 엄청나게 혼내며 두 번 다시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할 정도로 우리 정동배가 됐다. 나교수님은 내가 자랑스러워 호식대를 설립하신 초대 이사장님을 소개 시켜주시기도 하고 현직 이사장님, 그 가족들과 수차례 남원까지 함께 하기도 했다. 사실상 나는 호식대 가족들의 준페밀리쯤 된다. 아마도 내가 요청하면 이사장님은 학과를 만들어서라도 교수자리 정도는 주실 것이다. 지금 만나도 모두 잘해 주실 것을 믿는다. 이쯤이면 다들 내 소식을 궁금해 하실 것이다. 사천 사람들은 뭔가 많이 착각하고 있다. 내가 서울에서 내려간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다. 또한 곧 모든 소송이 끝날 것이라는 착각도 있었다. 나교수님은 내가 내려간다는 소리에 현금 백억을 줄 테니 결혼하자고 했다. 우리 나교수님! 그 외에도 유명 연예인과 강남의 부잣집 딸 등 수백억 재력가에서 사위로 받고 싶어했다. 바로 이런 일련의 일들을 감당 할 수가 없어 내려가 스스로를 정리하고 싶었다. 이런 것을 보면 대법원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된다. 물론 이는 법학 일반론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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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71

직장 생활 중이라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2차를 준비했다. 2차는 서류전형과 면접이라 이력서, 포트폴리오, 자소서 등을 준비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는 전문대학원이 3개가 있다. 보건전문대학원은 연건동에 있고 행정전문대학원은 주말 반으로 야간 비슷하다. 하지만 환경전문대학원은 사실상 주간으로 서울대 유일한 전문대학원으로 볼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예체능은 1년에 1명 정도의 T/O가 있다. 내가 아는 타대학 예체능계 출신이 서울대학원에 들어간 것은 미대 2명, 환경대학원에 내가 2번째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서울대 개교 이후 모두 4명 정도가 전부다. 얼마나 특이했으면 1년에 십수 명이 어떻게 들어 갔냐며 나를 찾아왔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 교수 중에도 98년쯤 연대 의대 출신이 처음으로 서울대 교수가 됐다고 교내신문에 실릴 정도다. 그만큼 서울대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폐쇄적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이 500여개나 되니 이런 학교 하나 정도 있는 것도 좋다고 본다.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모두 똑 같을 필요는 없다. 나는 주로 수출을 많이 다루어 해외를 여러 차례 나갔는데 국제사회에서의 서울대학교나 그 출신들의 위상은 국내에서 보다 더 대단하다. 당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송상현 국제사법재판소 소장 등도 서울대 출신이다. 한 번은 미국에서 당해 최고의 의학자 열 몇 명을 언론에 실었는데 그 중 4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물론 이들도 대학원은 하버드와 존스홉키스 출신으로 소개됐다. 최종 합격하고 알았는데 내가 시험 칠 때 서울 미대생 2명이 응시 했지만 모두 영어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운 좋게 내가 합격했다. 그 친구들이 영어를 잘 했으면 어이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합격 소리에 나교수님이 불러 감사 기도를 했다. 나교수님은 기도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천성을 보면 기도 할 때 잘 울 것도 같다. 암튼 누군가 내 일에 진심으로 이렇게 감사하는 것은 나교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심지어 어머니께 서울대학원에 합격했다고 했더니 그런데는 뭣하러 가냐? 돈이나 벌지!했다. 나교수님은 그동안 제자를 여러 명 보냈으나 모두 영어에서 탈락 했다. 아무튼 나를 위해 기도하는 나교수님께 그만 반하고 말았다. 이 때부터 우리 나교수님은 항상 우리 정동배, 우리 정동배 하셨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게 말하려 하면 엄청나게 혼내며 두 번 다시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할 정도로 우리 정동배가 됐다. 나교수님은 내가 자랑스러워 호식대를 설립하신 초대 이사장님을 소개 시켜주시기도 하고 현직 이사장님, 그 가족들과 수차례 남원까지 함께 하기도 했다. 사실상 나는 호식대 가족들의 준페밀리쯤 된다. 아마도 내가 요청하면 이사장님은 학과를 만들어서라도 교수자리 정도는 주실 것이다. 지금 만나도 모두 잘해 주실 것을 믿는다. 이쯤이면 다들 내 소식을 궁금해 하실 것이다. 사천 사람들은 뭔가 많이 착각하고 있다. 내가 서울에서 내려간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다. 또한 곧 모든 소송이 끝날 것이라는 착각도 있었다. 나교수님은 내가 내려간다는 소리에 현금 백억을 줄 테니 결혼하자고 했다. 우리 나교수님! 그 외에도 유명 연예인과 강남의 부잣집 딸 등 수백억 재력가에서 사위로 받고 싶어했다. 바로 이런 일련의 일들을 감당 할 수가 없어 내려가 스스로를 정리하고 싶었다. 이런 것을 보면 대법원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된다. 물론 이는 법학 일반론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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