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싼 똥은 국가가 치운다 012
노동자 등골에 빨대 꽂는 것 빼고는 식자들이 한 일은 거의 없다. 빨대 꽂는 것은 노동자 단체들도 똑 같다. 결국 식자가 국민을 배부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유전을 개발하는 등 타고난 바탕에서 찾거나 특허 등 기술적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다. 아니면 전쟁 한 번 하지 않고 일본이나 중국 땅을 뺐는 것도 좋다. 필요에 따라서는 전쟁을 해도 된다. 아니면 원자력, TV, 선박, 반도체, 자동차, 비행기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그 권리를 국내로 가져오는 것인데 이런 것이 뭐가 있는가? 아니면 얼마나 있는가? 대부분 제조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였으니 노동이 만든 결과가 확실하다. 이렇게 배가 좀 부르니 노동의 땀 위에 숟가락을 놓는 것이 식자다. 확실한 통계로도 얼마든지 입증이 가능한데 식자들은 이를 빙빙 돌린다. 아무튼 이런 변경된 미군의 전략은 공무원을 통해 즉각적으로 각 마을에 전달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각 마을은 이를 즉각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 하겠으나 우리가 어디 그런 민족인가? 우리 역사의 공무원 중에 민초를 바라본 자가 있는가? 말단 공무원도 없다. 모두 군주나, 일본, 미군, 독재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 아닌가? 그러니 변경된 미군의 작전은 전달되지 못했고 혹 누군가 전달 했어도 국가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국민들은 따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군은 흰색 옷을 입고 모여 있으면 공격하는 것이 작전이고, 마을 사람들은 알거나 모르거나 전쟁 중이라도 잔치는 한다는 신념이 충돌했다. 참으로 개탄스럽고도 어리석은 자들이 아닌가? 어느 날 미군은 조장 마을 정자나무 주변에 흰옷을 입은 수십인지 수백인지의 사람들을 발견했고 즉각 공습명령이 떨어졌다. 그 날 여름 나의 고향 조장 마을에는 미군의 공격으로 살아 남은 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이후 조장 음달 마을은 객지의 후손들이 터를 닦아 아직도 여름이면 때재사를 지낸다. 맞은편 양달은 대부분 외지(外地)의 군인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우리 가족 또한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이 쪽에서는 농사를 배울 만한 자가 없다. 양달 마을 저수지 옆 산은 임진왜란 때 정기룡 장군의 활약으로 목숨을 구한 조경 장군의 선산인데 그 후손이 살면서 유새했으나 지금은 없다. 저수지 바로 밑에는 선조 때, 유성룡의 후손이 자리 잡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 집안이 우리를 가장 성심껏 도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사실상 우리 집안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나 보이지 않는 역사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마을 가운데는 우물이 있었고 바로 옆이 우리 집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마을 가운데 위치하여 마치 감시를 당하는 것 같다. 원래 마을 우물은 지금의 배원 골프장 옆이었다. 당시 다른 사람이 살았던 우리 집터는 입구나 출구가 별도로 없어 아무 곳으로나 다닐 수 있었다. 뒤에 공동 우물이 생기면서 사실상 전용 우물 비슷하게 됐다. 지금 마을 문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바로 아래있는 집은 순종 임금 때의 궁녀가 내려와 사방에 탱자나무를 심어 놓고 위리안치했다. 얼핏보면 일반 마을 같으나 그 외도 자세히 보면 특이 할 만큼 이유 있는 집들이 우리 집을 빙 둘러 싸고 있다. 좀 억척하자면 이들은 보이지 않게 우리를 괴롭히는 악당들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살 길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을 구하지 못했거나 안해 고졸인 교감 선생님이 영어 수업을 대신했다. 교감 선생님은 알파벳도 제대로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수업이 제일 좋다. 친구들에게 확인이 필요 하겠지만 학기 마칠 때까지 영어 교과서를 단 한 페이지도 보지 않았다. 나는 시골에서 9년간 학교를 다녔는데 그 중 가장 유익한 수업이었다.
저도 공동발제자 하고 싶어요. 하게해주세요~~~네?